살아가는 이야기/내삶의 글

아버지를 생각하며...

봇데 2008. 2. 18. 10:25
      보름정도 입원하셨던 아버지를 오늘 퇴원시켰습니다. 절대로 큰 아들에게 고집 부리실 분이 아니신데도 정신이 없으신 가운데에도 집으로 가자고 간절히 원하셨습니다. 정말, 아들이 꿈에도 인정하기 싫은 부분은 병실바닥을 손바닥으로 쓸고계신 아버지를 뵈을 때 아! 아버지는 몸이 아프시지만 아들인 저는 가슴이 찟어지는 것 같이 아팟습니다. 이제는 이별 연습을 해야할 것 같습니다. 생의 반환점을 한참 돌아버린 이 나이에도 복 되게도 아픈 이별을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터라 아버지와의 이별 연습은 정말 적응이 되지 않고 상상도 되지 않습니다. 아들은 운전석에서 앞만보고 운전하고 아버지는 조수석에서 앞만 보고 계십니다. 40분 넘는 길을 좁은 차안에서 서로 말 한 마디 하지 못 하고, 송곳같은 침묵을 지키다가 고향길에 접어들 때 어디선가 그런 용기가 났는지 "아버지, 이렇게라도 살아계시니 저는 참 좋습니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이 말을 저와 아버지사이의 공간에 울려놓고 어두운길, 안개길도 아닌 길에 시야가 흐려져서 한참을 서행했습니다. 아버지 연세 올해 예순아홉... 그렇게도 무서운 아버지였는데... 그렇게도 강직한 아버지였는데...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서 6.25를 겪고 13살때부터 친척 집 머슴살이로 시작해서 고생 고생하며 지금까지 왔는데... 친구와 형들은 책보자기를 들고 다닐 때 어린 아버지는 꼴망태를 들고 다니셨는데... 자식 삼남매를 나 같이 키우지 않을려고 온갖 막일을 다해가며 대학교육을 다 시키셨는데... 그 험한 세상에서 열등의식과 싸우기위해 항상 술이 친구였던 분이셨는데... 지금은 그 친구가 아버지를 옥죄고 있습니다. 막일의 댓가인 얕은 봉투를 들고 오시면서 동네 외상값을 다갑고 어머니께 내 밀었을 때 부부싸움이 크게 난 적도 있었는데... 큰 아들 장가보내고 아들과 며늘이가 뭐가 그리 어려우셨는지 눈 한번 마주하지 않으셨는데... 손자 사진 큰 방에 걸어 놓고 들 일 나가실 때 마다 "주환아 할아버지 밭에간다. 니는 학교갔나?" "주환아 할아버지 집에 돌아왔다. 니는 밥뭇나?" 하시며 예수님 고상보다 더 손자를 생각하셨는데... 목탁을 두들기는 큰 집 분위기와는 반대로 "너희들은 성당에 가거라" 이 말씀은 가히 충격적이였습니다. 여동생, 저, 어머니, 남동생순으로 모두 주님의 자녀가 되었어도 실상 당신이 주님의 자녀가 된 것은 약 5년 정도 전 이였지요. 한글을 잘 모르고 공부가 어려웠던 솔직한 심정을 틀어놓고 말씀하지 않으신 걸 이제야 알았습니다. 이 다음에 크면 절대로 아버지 같은 사람은 되지 않으려고 맹세하고 자랐는데... 아버지를 닮아서 광대뼈가 나왔고 아버지를 닮아서 키가 크고 아버지를 닮아서 다리를 꼬고 앉고 아버지를 닮아서 말 술을 먹고 아버지를 닮아서 철두철미 한가 봅니다... 몇 일 지나면 또 입원해야 될 것을 알면서도 아버지의 뜻대로 퇴원했습니다. 퇴원날 수액침을 뽑으면서 지혈이 되지않아 제 손에 아버지의 선홍색피를 가득 묻혔습니다. 아버지가 이렇게도 가여워 보인적은 가히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 모든 회한을 어머니 성모님께 의지하며 제 삶을 관유하고 계시는 주님께 맡깁니다. 아니, 아직까지 주님께 모든것을 의탁하면서도 너무 낳설고 두렵습니다. 아직도 아버지께 하지 못한 일이 있습니다. 퇴원길 차안에서 차마 하지 못한 말' "아버지!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제 아들, 딸을 안듯이 가슴으로 꼭 안아보고 싶습니다. ........ 사랑하는 카페가족 여러분,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기시기위해 들러셨다가 저의 넋두리에 고문을 당하셨지요. 깊이 죄송함을 전하며 우리 차 두잔을 올립니다. fel

'살아가는 이야기 > 내삶의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27시...  (0) 2008.02.19
한 아이를 사랑하였습니다.  (0) 2008.02.18
일 출  (0) 2007.11.09
미움도 괴롭고 사랑도 괴롭다(법정)  (0) 2007.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