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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27시
어제 12월 16일은
진량성당 레지오 연차총친목회 때문에
아침 8시 30분경에 집을 나간것이
밤 11시 50분이 되어서야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행사 봉사자와 저녁을 먹고 술도 한 잔 했기에
정신은 몽롱하고 육체는 피곤한 하루였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주님과 함께한 날은 후회가 없습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저녁마다, 주말마다 아빠없는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남편없는 아내에게 늘 미안하지요.
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것만이 아니네요.
자식역활도 참 등안시 하고 있습니다.
피곤한 일상을 뒤로 하고 카페에 '오늘의 복음' 을 올려놓고
12시 20분 경에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새벽 1시를 조금 넘어서 전화벨이 울립니다.
울리건 말 건 그냥 잘 때도 있는데
저도 나이를 먹어선지 왠지, 하는 예감이 들어
수화기를 빨리 들었습니다.
'너거 아버지가 이상하다'
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진짜 10초만에 옷을 챙겨입고
자가용으로 20분 걸리는 길을 10분 만에 주파하여
부모님 댁에 도착했습니다.
마당에 들어서니 희미한 달빛에 비친
화단의 앙상한 나무도 그대로고
화단앞에 장독대도 그대로인데
이 야심한 밤에 두분께서 거쳐하시는 방에는
훤하게 불이 밝았습니다.
어린시절 늘 열던 그 방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버지는 혼수상태에서 횡설수설하시고,
그렇게 강직하게 사셨던 어머니는 떨리는 목소리로
'초저녁에는 괜찮았었는데 정신이 좀 없다'
라고 하셨습니다.
평생 아버지 손 한번 잡아보지 않았던 큰아들이
덥썩 수세미같은 손을 잡고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주님, 또 이렇게 간절한 기도를 드립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아버지의 시간을 허락해 주십시요.
성모님 저를 도와 주십시요'라고...
벌써 주님께 이렇게 애걸한 것이 10번은 훌쩍 넘은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효도 한 번 못하고
내일이면 아무일 없었듯이 일상으로 돌아와 버립니다.
주님께서 생각하시기에 이 티클같은 저를 얼마나 사랑하셨으면
또 이렇게 기회를 주시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새벽 3시경 아파트로 돌아와서
세상 모르고 잠자고 있는 두 아이와 아내를 보는 순간,
어디서 이런 생각이 드는지 모르지만
'아 참으로 외롭다' 하는 생각이 들었고
모로 누운 베게가 촉촉히 젖는
새벽에 잠자리를 들었습니다.
2007. 12. 17.
f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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